꽃제비 단식을 시작하며 (2)
  • 북한맨
  • 2011-04-05 03: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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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칼럼-1
 

꽃제비 단식을 시작하며

 

따스한 대낮과는 달리 어둠이 내린 여의도는 무척이나 춥다. 한강의 차가운 강바람이 조용히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거리를 내리 훑는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옷을 껴입은 채 침낭에 들어갔건만 추위는 여전하다. 붉으스레한 가로등도 냉기를 발산하는 듯 하다. 추위를 느끼며 길거리에 쭈구리고 있는 내 모습이 바로 꽃제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나 같이 중무장하고 잘 준비한 꽃제비는 북한에 없을 것이다. 아마 북한에서 꽃제비로 갖은 고생을 다하며 살았던 탈북자들이 내가 쓴 글을 보고 미친놈이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입고 깔고 덮고 있는 것을 모두 갖춘 사람이라면 북한에서는 꽃제비가 되지 않았을 테니까. 대한민국에서는 노숙자는 있어도 꽃제비는 없다.

 

내가 나름대로 상상하고 준비했던 단식은 너무나도 호사스럽고 우아한 것이었다. 남한에 너무 오래 살았나보다. 남한생활 17년이면 긴 세월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정도로 오래 살았다. 이제는 남한의 풍요로움과 멋스러움을 알고 누리다보니 우아하고 호사스런 단식을 준비해놓고는 북한주민들을 위한다고 내심 자부심도 가졌던 내가 부끄럽다.

 

남한사람들이,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이부자리랑 갖추어놓고 단식하는 모습이랑 너무 많이 본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건강도 챙기면서 단식을 하려고 생각했으니 북한사람의 근본을 많이 잃어버린듯 하다.

 

내가 북한을 떠난 것은 1991년 10월말이었다. 그 이듬해 1992년 말에 조국의 북부지역에서 한 달 넘게 식량배급이 되지 않아 사람들이 굶어죽는다는 소식을 듣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와서 수백만명이 굶어죽고 식인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뉴스와 증언을 들었다.

 

내 고향 함흥이 1990년대 후반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에 가장 많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고향에서 온 한 여성은 매일 아침 대로변에는 굶어죽은 시체들이 즐비해서 시체 수거차가 지나다녔다고 했다. 함흥의 내가 살던 집은 역전에서 2키로미터 정도 떨어졌는데 그 정도의 길을 출근하다보면 매일 시체 7~8구 정도 있었다고 했다. 3백여만명이라는 아사자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북한주민들이 먹지 못하고 굶어죽기 시작한 것이 어언 20년이 됐다. 이제 북한주민들의 겪는 식량난은 일상이 됐고 그 과정에서 김정일 독재정권도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다. 김일성 사망 후 3년간의 애도기간을 정하고 1997년 농업담당비서를 총살한 것은 김정일이 식량난과 대량아사의 위기를 넘기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일 독재정권이 붕괴할 결정적 시기가 될 무렵 남한과 국제사회의 인도적인 식량지원이 시작됐다. 2000년 6.15정상회담으로 김정일은 기사회생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5,6년이면 통일한다”고 남한 언론인들 앞에서 큰 소리 쳤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김정일은 심화조 사건으로 수만명을 숙청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졌고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했다. 햇볕을 받으면 따스함과 성의를 느껴서 변할 것이라던 김정일은 남한이 쪼여준 햇볕을 에너지로 삼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고 핵 공격 위협까지 해왔다.

 

요즘 북한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전 세계를 상대로 식량 구걸을 하고 있다. 모든 에너지를 독재유지에 쏟아붓다보니 이제 남은 것이란 구걸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나 정부나 북한의 식량난이 예년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내년 강성대국 사기극을 위해 식량을 비축하려는 의도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식량난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굶어죽기 시작해서 어언 20년,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시작되어 15년이 지났지만 북한은 변한 것이 없다. 또다시 북한의 역전과 시장에는 꽃제비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과거엔 어린이들만 꽃제비였다면 지금은 남녀로소 가리지 않고 북한의 모든 국민이 꽃제비가 되어 가고 있다.

 

꽃제비란 국가가 개인의 인권을, 가정을, 부모를 빼앗았기 때문에 생겨난 피해자들이다. 집이 있어도 추위 때문에 얼어죽은 노인들, 부모도, 집도 없어 밖에서 얼어죽고 굶어죽는 어린 꽃제비들이 가득한 북한을 향해 전 세계가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며 인권의 심각성을 경고 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북한과 통일을 하겠다는 대한민국에서만은 북한주민의 인권을 외면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북한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권보장의 가능성을 열어줄 북한인권법이 3년째 통과는 커녕 상정도 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인권법 통과를 불허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민족의 통일을 이루겠다고 그토록 웨쳤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다.

 

여의도의 날씨가 두툼한 겹옷을 뚫고 들어오는 이 밤, 북한 전역의 어느골목, 어느 움막속에서 꽃제비들은 무엇으로 추위를 견딜지 모르겠다. 그들을 생각하며 무모하게 단식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여의도의 둥근 지붕아래로 불어오는 추위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북한민주화위원회가 북한인권법 통과 촉구 모임을 가졌던 자리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제단이 4대강 반대 미사를 열고 있었다. 그들의 4대강 반대 플래카드 위엔 이렇게 써있었다.

“남북화해 되살려서 온누리에 평화를! 민주정부 수립해서 만민에게 인권을!”

댓글목록

박수님의 댓글

박수 작성일

밤에는 춥겠는데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꼭 승리할 것입니다.

대동강의기적님의 댓글

대동강의기적 작성일

굶어죽은 300만 영혼들과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영혼들이 벌떡 일어나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 같네요
북한의 인권에 관심을 둔 한 사람으로써 함께하지 못함이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마음으로나마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