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권문 제(1)
  • 관리자
  • 2010-06-07 15: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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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한 의 인 권 문 제

일본의 독자들에게

나는 원래 이 글을 북한 동포들을 위해 썼다. 그러나 지금 형편에서는 이 글을 북한 동포들에게 전달할 길이 없다.

일본에는 적지 않은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다. 특히 조총련은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우선 재일 동포들이 이 글을 읽고 그들을 통하여 이 글이 북한 동포들에게 전달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나는 또 일본인민이 조선문제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조선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일본의 가장 가까운 나라이다. 지난날에는 일본이 조선을 대륙침략의 교두보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도 변하였고 일본도 달라졌다.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일본의 근본이익은 대륙의 여러 나라 인민들과 친선협조관계를 확대 발전시키는데 있다. 일본이 시대적 요구에 맞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새 세계를 건설하는데서 응당한 역사적 기여를 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가까운 나라와의 친선협조 관계부터 강화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냉전의 유일한 유물로서 동북아세아의 평화로운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문제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4대국 가운데서 중, 미, 러 등과는 달리 일본은 한국과 함께 무분별한 북한 군국주의의 직접적인 공격목표로 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인민이 결코 조선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일본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나의 글에서는 북한을 옳게 인식하는데 도움으로 되는 진실이 소개되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관심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나는 전대미문의 개인독재체제에서 가족이나 친우들에게도 속을 털어놓을 수 없었고 재일 동포들과 일본의 친근한 벗들에게도 허위선전을 많이 하였다. 이점에 대하여 나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내가 북한 통치자들과 결별하고 남한으로 넘어오면서 허위선전과도 결별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때부터는 글을 쓸 때마다 나는 거짓을 선전하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언제나 첫자리에 놓았다. 그래도 나의 글이 진실과 맞지 않는 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독자들이 나의 글에서 이런 점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은 내가 북한에 있을 때와 같이 의식적으로 범한 과오가 아니라는 점을 양해하고 서슴없이 비판, 시정하여 주기 바란다.

일부 사람들은 내가 40여 년간 북한의 두 최고 통치자들을 도와 그들의 지도사상을 주관하여 온 만큼 그들의 반인민적 독재의 결과에 대해서도 응당 책임을 느껴야 할 터인데 어째서 글에서는 자기 비판이 없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탈북한 것은 그 누구 앞에서 말로써 사죄하거나 자기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북한 실정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도탄에 빠진 북한 인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서 협조를 얻어보려는 염원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도덕적 양심과 관련한 정신적인 자기 비판이라면 북한 땅에서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의 자기 비판은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적으로 해야 하며 단순한 참회가 아니라 적극적인 속죄로 되어야 한다.
내가 가족과 친지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남으로 넘어오는 길을 택한 것 자체를 실천적인 자기 비판의 시작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자기 비판의 실천만을 계속할 것이며 자기 비판으로써 생을 끝마칠 것이다.

이 기회에 한가지 더 첨부하여 말해두고 싶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가혹한 북한 통치체제를 반대하여 사선을 넘어온 많은 탈북자들의 용감하고 애국적인 소행에 대하여 응당하게 평가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인권을 존중히 여기는 선량한 사람들이 마땅히 취하여야 할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만일 북한 땅에서 인권을 위하여 싸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개척할 수 있다면 왜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하는 험난한 길을 택하였겠는가. 어려운 고비를 넘어보지 못한 사람일수록 남의 사정을 잘 모르고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법이다. 자기 집에서 고이 자란 도련님들이 남의 집 눈치밥을 먹으며 일하는 머슴살이 신세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문장의 문구나 따지며 말씨름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정체를 똑바로 인식하고 정확한 대북한 전략을 세우기 위하여 지혜를 합치는 것이다.

사업의 성패는 사람들의 의욕과 노력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운명을 시대의 흐름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옳고 옳지 않는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 하는 것은 종국적으로는 역사의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 장 엽. 1999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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